•  
  •  
  •  
  •  
  •  
  •  
  •  
  •  
  •  
  •  
[주의!] 문서의 이전 버전(에 수정)을 보고 있습니다. 최신 버전으로 이동
이 문서는 분류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분류:분류에서 적절한 분류를 찾아 문서를 분류해주세요!
딮스마르크 추격전
Last battle of the battleship Dipsmark
Ultima battaglia della corazzata Dipsmark
파일:딮스마르크추격전.webp
▲ 주포를 발포하는 전함 딮스마르크
장소
랜드해협
교전국
지휘관
-함대사령관
파일:괴뢰깃발.png 하인리히 볼프강
-딮스마르크 함장
파일:괴뢰깃발.png 프리드리히 켐퍼†
-함대사령관
파일:마베라국기.png 구글리엘모 브라가
-바슈르 함장
파일:마베라국기.png 오토리노 스크라이베리†
전력
항공모함 2척
전함 3척
순양함 4척
구축함 7척
전함 1척
순양함 1척
피해 규모
전함 1척[1] 격침
구축함[2]1척 격침
전함 1척[3] 중파
경순양함 1척 손상
함상 전투기 2기 손실
1,477명 전사
5명 부상
전함 1척 격침
2,200여 명 전사
111명 포로[4]
결과
마베라 해군의 승리
전함 딮스마르크 침몰
영향
웨스타시아 해군의 수상함 통상파괴전 위축
1. 개요2. 서론3. 배경
3.1. 웨스타시아 해군의 지원 준비3.2. 당시 마베라 해군의 반응3.3. 루이나의 반응
4. 전개
4.1. 추격 시작4.2. 포틸락스 해협 전투와 바슈르의 침몰
4.2.1. 마베라 함대의 선공4.2.2. 웨스타시아 함대의 반격4.2.3. 바슈르 격침4.2.4. 프린스 오브 페드로의 철수4.2.5. 해전의 평가4.2.6. 해전 이후
4.3. 딮스마르크와 잠수함 부대의 공조 시도4.4. 재추격
4.4.1. 마리오 웨이크-워커 제독의 추격 함대4.4.2. 딮스마르크의 라인 연습 작전 포기4.4.3. 다른 마베라 함대의 활동4.4.4. 딮스마르크와 프린스 오브 페드로의 2차전4.4.5. 빅토리어스의 딮스마르크 공습과 프린스 오브 페드로와의 3차전4.4.6. 딮스마르크의 도주4.4.7. 사라진 딮스마르크와 마베라 해군의 수색4.4.8. 발각4.4.9. H 함대 본대의 딮스마르크 공격4.4.10. 표류하는 딮스마르크4.4.11. 제4구축함 전대의 딮스마르크 공격
4.5. 웨스타시아 해군의 유보트 배치4.6. 딮스마르크의 최후
4.6.1. 교전 시작4.6.2. 파괴되는 딮스마르크4.6.3. 딮스마르크의 자침 시도와 마베라 해군의 뇌격4.6.4. 해전 이후4.6.5. 웨스타시아 공군의 보복

1. 개요 [편집]

마테르 전쟁 중이던 1983년, 라인 연습 작전(Operation Rheinübung)에 따라 웨스타시아의 대형 전함 딮스마르크가 출항하자 마베라 해군이 추격에 나서면서 1983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랜드해협에서 벌어진 작전이다. 결국 마베라 해군이 딮스마르크를 격침시키며 종료되었다.

참고로 딮스마르크 추격전은 크게 "포틸락스 해협 해전"과 "딮스마르크 추격전" 두 부분으로 나뉘며, 따라서 본 문서에서는 두 해전의 문단을 따로 분리하여 서술하였다.

2. 서론 [편집]

딮스마르크를 격침하라(Sink the Dipsmark)
In May of 1983 the war had just begun. The Westasians had the biggest ship, they had the biggest guns. The Dipsmark was the fastest ship that ever sailed the sea. On her deck were guns as big as steers and shells as big as trees. Out of the cold and foggy night came the Mavera ship, the Bashur. And every Mavera seaman, he knew and understood. They had to sink the Dipsmark, the terror of the sea. Stop those guns as big as steers and those shells as big as trees.

1983년 5월 전쟁이 지속되던 즈음 웨스타시아는 거포가 달린 거대한 전함을 보유하고 있었다. 딮스마르크 전함은 당시까지 바다를 항해한 배 중 가장 빠른 배였고, 그 갑판에는 초대형 함포와 포탄들이 있었다. 춥고 안개가 자욱한 랜드해협의 밤 중에 마베라 전함 바슈르가 나타났다. 모든 마베라 선원들은 알고 있었다. 바다의 공포, 딮스마르크를 반드시 격침시켜야 한다는 것을. 그 거대한 함포와 포탄들을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딮스마르크를 격침하라(Sink the Dipsmark) 가사 중.

1983년 웨스타시아의 수반 앨빈 C. 요크는 마테르 전쟁에서 마베라를 상대로 통상파괴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이 통상파괴전의 목적은 마베라로 향하는 상선을 파괴해 마베라를 고립시키는 것이었고, 부분적인 성과를 거두었지만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던 와중 신예 웨스타시아 전함이자 당대 최대 전함 중 하나인 딮스마르크가 전장에 투입되었다. 마베라는 이를 알아차리자마자 마베라 본토 함대를 투입해 추격을 시작했다.

1983년 5월 24일, 마베라의 상징적인 전함 바슈르와 신예 전함 프린스 오브 페드로는 랜드해협에서 딮스마르크와 마주쳤고, 연료 탱크를 타격해 손상시키는 데 성공했으나 프린스 오브 페드로가 무력화되고 바슈르가 격침되는 피해를 입었다. 마베라 해군의 상징이던 바슈르가 격침당하자 분노한 마베라 전역의 군함들이 모여들어 딮스마르크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5월 26일, 집요한 추격 끝에 딮스마르크는 마베라군의 뇌격으로 인해 조타 장치가 손상되어 키가 꺾인 상태로 고정되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다. 다음 날 아침, 웨스타시아 해군의 집중 포화를 받은 딮스마르크는 결국 랜드해협의 심해로 침몰했다. 이 전투에서 웨스타시아는 가장 중요한 전함 중 하나를 잃으며 통상파괴전 수행 능력이 약화되었지만, 드라마틱한 추격전의 전개는 후대에도 깊이 기억되고 있다.

3. 배경 [편집]

1983년 당시 마베라는 랜드해협 전역에서 팽창하는 파시즘의 기세를 저지하는 데 앞장선 사실상 유일한 세력이었다. 추축국 웨스타시아는 해상과 육상에서 세력을 확대하고 있었고, 그 결과 동랜드국가들의 균형은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다. 마베라는 이러한 상황을 좌시하지 않고, 해양 강국으로서의 전통과 전략적 이해관계를 걸고 웨스타시아의 팽창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델라웨어는 당시 웨-델 불가침조약을 통해 중립을 표방하며 전면전을 피했지만, 웨스타시아와 마베라 사이의 긴장이 높아지자 사실상 웨스타시아의 조력자 역할을 자처했다. 델라웨어의 적극적인 태도는 마베라를 더욱 고립시켰고, 마베라는 홀로 웨스타시아의 파시즘적 팽창에 맞서 싸워야 했다.

그러나 마베라는 전통적으로 해양 강국이었기 때문에 고립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수많은 상선들을 이용해 물자와 원료, 군수품들을 본토로 운송하거나 주요 전선으로 배치하고 있었다. 웨스타시아 역시 이러한 마베라의 해상보급선을 잘 알고 있었기에 유보트와 소수의 수상함들을 투입해 통상파괴작전을 수행했으나, 마베라를 완전히 굴복시키는 데에는 실패하고 있었다.[5]

1983년 3월, 전함 럭샤른호르스트시후니제나우의 통상파괴작전이 무사히 끝났고, 같은 해 5월에는 중순양함 어드미럴 디퍼까지 가담하여 랜드해협에서의 통상파괴작전을 준비했다. 여기에 막 취역한 대형 전함 딮스마르크와 중순양함 프린츠 엘데른도 포함되었다. 원래 계획은 럭샤른호르스트, 시후니제나우, 딮스마르크, 프린츠 엘데른으로 이루어진 4척이 동시에 출항하여 전대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출격할 경우 마베라 해군이 수송선단을 전함으로 호위하더라도 이를 압도해 수송선단을 전멸시킬 수 있었다. 이는 과거 럭샤른호르스트와 시후니제나우가 출격했을 때, 호위 전함을 발견하고 공격을 포기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수상함에 의한 수송선단 공격을 계속 유지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조치였다.

그러나 럭샤른호르스트와 시후니제나우는 귀환 후 마베라 공군의 폭격을 맞거나 기관 수리에 시간이 걸려 예정대로 출격하기 어려워졌다. 웨스타시아 해군은 통상파괴작전을 지속하기 위해 전력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공격 전대를 출격시키기로 결정했고, 결국 딮스마르크와 프린츠 엘데른을 우선 출격시키게 되었다.

3.1. 웨스타시아 해군의 지원 준비 [편집]

이같은 작전 목표에 의해, 딮스마르크와 프린츠 엘데른의 지휘를 맡은 해군 대장[6] 구글리엘모 하르토네 제독은 "딮스마르크의 목표는 마베라의 주력 함대를 상대하는 것이 아니다. 상선을 공격하고 군함과 조우할 경우 가급적 교전을 피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러한 전술적 목표를 위해서는 랜드해협에서 작전 중인 유보트 전력과의 협조가 필요했다.

1983년 4월 8일, 하르토네 제독은 오랜 친구이자 해군사관학교 동기였던 잠수함대 사령관 해군중장 카를로 도니치 제독과 포르투 알레그레[7]에서 회의를 열고 딮스마르크 투입에 따른 유보트 지원을 논의했다. 잠수함대 선임 장교를 연락 장교로 딮스마르크에 승선시키고, 별도의 주파수를 이용해 함대 사령관과 잠수함 전대장 간 상시 교신을 유지하기로 결정했으나, 모든 유보트의 작전 행동은 잠수함 사령부의 명령이나 하르토네 제독의 요청이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기존 지시대로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웨스타시아 해군은 두 군함에 연료, 군수물자, 탄약을 보급할 수 있도록 랜드해협 인근 해역과 북마베라해 근처에 보급 선단을 배치했다. 모든 준비가 완료된 후, 5월 18일 라인 연습 작전이 시작되었고, 딮스마르크와 프린츠 엘데른 두 척은 고텐하펜에서 출항했다. 5월 19일, 오토리노 스크라이베리 함장은 승조원들에게 랜드해협으로 나가 보급 선단을 타격할 것임을 알렸다. 이날 11시 25분에 구축함 Z-23과 Z16 프리드리히 에콜트가 합류했고, 밤 22시 30분에 Z10 한스 로디가 합류하여 총 3척의 구축함 호위를 받게 되었다.

함대는 20일 13시에 마베라 해군이 기뢰를 깔아둔 포틸락스 해협에 도달했다. 하르토네 제독은 제5 소해함대(the 5th Minesweeping Flotilla) 지휘관 프레가텐카피탄 루돌프 렐에게 소해 작업을 지시했다. 북쪽의 스카게락크 해협은 기뢰가 없었으나, 하르토네 제독은 마베라 해군의 잠수함이 매복하고 있을 가능성을 우려해 대기하기로 했다. 이후 소해된 해역을 따라 17노트의 속도로 지그재그 항해를 하며 그날 오후 16시에 기뢰 지대를 통과했고, 다시 서쪽으로 변침해 크리스티안산의 기뢰 지대를 통과했다. 이번에는 소해 없이 구축함 3척을 앞세워 27노트로 돌파했고, 22시에 기뢰 지대를 벗어났다.

이들은 5월 21일 오전 9시에 델라웨어령 베르겐 항에 도착했다. 딮스마르크는 외곽의 [몰?루]에 닻을 내렸고, 프린츠 엘데른은 북서쪽 [몰?루] 만에 정박했다. 구축함들은 재급유를 위해 베르겐 항으로 들어갔다. 딮스마르크와 프린츠 엘데른의 승조원들은 웨스타시아 공군 전투기의 항공 엄호를 받으며, 현지 징발한 상선들을 어뢰 방패로 옆에 정박시킨 후 북마베라해 위장 도색을 지우고 랜드해협 작전에 사용될 표준 회색 도색으로 선체를 다시 칠했다. 이때 프린츠 엘데른은 유조선으로부터 재급유를 받았지만, 딮스마르크는 재급유를 받지 않았다.

3.2. 당시 마베라 해군의 반응 [편집]

하르토네 제독의 기뢰지대 돌파는 시간을 낭비한 큰 실책이었다. 이는 마베라 해군에게 대응할 시간을 벌어주었다.

20일 아침, 루이나의 군사위성이 랜드해협 상공을 정기적으로 감시하던 중 딮스마르크와 프린츠 엘데른의 항적을 포착하였다. 이 정보는 즉시 마베라 해군 사령부로 전송되었고, 그날 오후 13시에 마베라 해군의 순양함 산타 마르가리타(Santa Margherita)가 접근하여 두 함선을 육안으로 확인하였다. 19시에 랜드해협의 레지스탕스와 협력하던 정보요원 알프레도 루소(Alfredo Russo) 대령이 마베라 주재 무관 마리오 덴함(Mario Denham) 대령에게 2척의 대형함이 랜드해협에서 포틸락스 해협으로 북상중이라는 정보를 전달했다. 20시 58분, 덴함 대령은 즉시 본국 해군 사령부에 이를 보고했고, 22시 무렵에는 비고 악셀리(Viggo Axelli)를 비롯한 마베라 점령지의 레지스탕스들이 해안에서 딮스마르크와 프린츠 엘데른을 육안으로 확인한 뒤 무전을 통해 마베라 해군성에 제보하였다. 이렇게 확보된 첩보는 교차 검증을 거쳐 신뢰할 수 있는 정보로 분류되었고, 마베라 해군은 즉시 대응에 나서기로 결정했다.
파일:bismrhein4.webp
파일:bismrhein6.webp
북마베라해로 항해 중인 딮스마르크
[몰?루]에 정박한 딮스마르크와 [몰?루]만으로 향하는 프린츠 엘데른(우측)

이때 마베라 해군의 브라가 제독은 보고를 받은 즉시 본토함대에 전투 준비를 명령했다. 21일 오전 11시, 브라가 제독의 지시로 출격한 정찰기 2대가 랜드해협 북부 해안을 수색했다. 조종사 미켈레 F. 수클링(Michele F. Suckling)이 13시 15분, 고도 8천 미터 상공에서 촬영을 마치고 14시 15분에 기지로 귀환했다. 필름은 급히 수도로 이송되어 현상되었고, 곧 마베라 해군 사령부 전체에 “5월 21일, 델라웨어 [몰?루]인근에서 딮스마르크급 전함과 프린츠 엘데른급 중순양함이 발견되었다.”는 정보가 공유되었다.

브라가 제독은 이 정보를 토대로 웨스타시아 함대의 의도를 분석했지만, 이들이 단순한 상선 공격인지 아니면 더 큰 전략적 목표를 노리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당시 마베라 본토함대는 막 건조된 최신예 전함 프린스 오브 페드루, 상징적인 바슈르, 그리고 몇몇 중순양함과 항공모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딮스마르크와 동급의 대형 전함은 보유하지 못한 상태였다.

바슈르는 마베라 해군 최대의 함선이었으나, 함령이 오래되고 충분한 대개장도 받지 못해 속도와 방호력이 부족했으며 순양전함 특성상 장갑이 얇아 정면 교전에서는 불리했다. 프린스 오브 페드루는 막 취역한 신예함으로 포탑 시스템이 완비되지 않았고, 기술자들이 동승해야 할 정도로 준비가 미흡했다. 항공모함 빅토리오스 역시 취역 직후라 함재기 운용 경험이 부족했고, 조종사들의 숙련도가 낮아 전투 손실 위험이 컸다.[8] 이러한 준비 부족에도 불구하고, 브라가 제독은 마베라 해군의 모든 가용 전력을 투입하여 웨스타시아의 팽창을 저지하고 랜드해협의 해상보급로를 사수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3.3. 루이나의 반응 [편집]

루이나는 랜드해협에서 웨스타시아 전함 딮스마르크와 프린츠 엘데른이 포착되었다는 보고를 받은 직후, 모든 해군 전력에 비상경계태세를 발령하였다. 루이나 해군 본부는 즉시 각 함대 사령부에 작전명령을 하달하며, 평시 대비태세를 해제하고 가동 가능한 모든 전력을 전투 준비 상태로 전환시켰다.

특히 주요 항로와 전략 요충지에 배치된 루이나 함대들은 정박 중이던 함정들의 정비 일정을 조정하고, 승조원들을 조기 소집하여 출동 준비를 완료하였다. 항공모함 전단과 순양함, 구축함 전력은 항공대와 합동으로 실시간 정보를 공유하며 웨스타시아의 움직임을 추적했고, 해상초계기와 군사위성의 감시망이 더욱 촘촘히 운용되었다.

이러한 조치로 루이나는 모든 함대의 가동률을 최대치로 끌어올려웨스타시아와 마베라 간의 전투 확전에 대비하였으며, 랜드해협 전역의 정세 변화를 예의주시하며 자체 방어선과 통상로 방호 계획을 재점검하였다.

4. 전개 [편집]

4.1. 추격 시작 [편집]

5월 21일 19시 30분, 웨스타시아 전함 딮스마르크는 닻을 올리고 [몰?루]만으로 나가 프린츠 엘데른 및 3척의 구축함과 합류했다. 이들은 20노트의 속력으로 [몰?루]를 통과하며 북쪽으로 이동했다. 그 직후 마베라 공군의 정찰기 5대가 [몰?루]만 상공에 도착해 조명탄을 투하하며 폭탄 공습을 감행했지만, 이미 딮스마르크는 그곳을 벗어난 상태였다. 악천후로 인해 시야가 흐리고 비가 많이 내려, 마베라 공군은 결국 딮스마르크를 놓치고 말았다.

같은 날 자정 무렵, 마베라 해군 총사령관 브라가 제독은 부제독 란슬롯 에르네스토 홀란드에게 바슈르와 프린스 오브 페드루를 포함한 함대를 지휘하여 북랜드 해역을 순찰하라고 지시했다. 브라가 제독 본인은 킹 페드루 2세급 전함과 항공모함 빅토리오스를 포함한 함대를 이끌고 북마베라해 남부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중순양함 알레킨과 몬타나는 웨이크-워커 제독이 기함 노포크에 승함한 상태에서 포틸락스 해협을 수색하도록 명령받았다.

22일 새벽 4시 20분, 딮스마르크와 프린츠 엘데른은 구축함 호위를 해산하고 두 척만으로 북상하며 작전을 계속했다. 같은 날 저녁, 마베라 정찰기 파일럿 노엘 고다르드 소위가 [몰?루]상공을 정찰했으나, 웨스타시아 전함들은 이미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이 소식을 접한 브라가 제독은 22시, 스카파 플로우의 모든 함대를 출항시켰다. 순양전함 리펄스는 호송 임무에서 해제되어 다음날 아침 브라가 제독의 본대에 합류했고, 순양함 아레투사는 아이슬란드 인근에서 초계 중인 맨체스터 및 버밍햄과 합류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마베라 해군 지휘부는 웨스타시아 함대의 침로를 3개로 추정하고, 세 방향 모두에 항공 정찰을 실시했다. 최종적으로 브라가 제독은 홀란드 제독의 함대를 북마베라해 남부로 보내고 랜드해협 북부 해역을 담당하도록 지시했으며, 본인은 남쪽 해역에서 웨스타시아 함대를 차단하기로 했다.

한편, 웨스타시아 함대는 23시 22분 서쪽으로 침로를 변경했다. 웨스타시아 함대 기상학자 하인츠 엑스터브링크 박사는 아침이 되면 날씨가 맑아질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하르토네 제독은 노출 위험을 줄이고 북마베라해로 빨리 진출하기 위해 재급유를 포기했다. 이 결정으로 딮스마르크는 재급유 기회를 모두 놓치게 되었다.

그날 밤, 루프트바페의 정찰 보고를 받은 웨스타시아 본부는 북마베라해 남부에 마베라 주력 전함과 항공모함이 정박 중이라는 불확실한 정보를 전달했으나, 하르토네 제독은 자신들이 발각되지 않았다고 착각했다. 그러나 23일 19시 11분, 웨스타시아 함대 레이더에 낯선 함선이 포착되었다. 19시 22분, 견시가 12,800m 떨어진 중순양함 한 척을 발견했고, 프린츠 엘데른은 그 함선의 무선을 가로채 ‘서포크’라는 호출 부호를 확인했다. 같은 시간, 서포크 역시 딮스마르크를 발견했지만 곧 안개 속으로 숨어버렸다.

20시 무렵, 홀란드 제독의 함대가 마베라 북부 해안을 지나며 보고를 받았다. 홀란드는 프린츠 엘데른이 동행 중이라는 정보는 받지 못했으나, 딮스마르크가 북진하는 것을 확인하고 T자 진형으로 요격하기로 결정했다.

20시 30분, 노포크는 딮스마르크에게 발각되어 5차례 일제 사격을 받았다. 3차례의 협차탄과 지근탄으로 피해를 입었고, 이 과정에서 프린츠 엘데른도 불명의 함선에게 포격받았다고 보고했다. 주포 발사로 후미 레이더 FuMO27이 고장 나자, 웨스타시아 함대는 선도함을 프린츠 엘데른으로 변경했다.

이 시점에서 웨스타시아 해군은 마베라 해군의 전력 대비 열세에 놓여 있었고, 딮스마르크가 전함이 아니었다면 이미 작전이 실패했을 상황이었다.

4.2. 포틸락스 해협 전투와 바슈르의 침몰 [편집]

포틸락스 해협 해전
Battle of Potilax Strait
웨스타시아어 : Schlacht an der Potilaxstraße
장소
랜드해협 포틸락스 해협
교전국
지휘관
-함대사령관
파일:마베라국기.png 브라가 제독
-프린스 오브 페드로 함장
파일:마베라국기.png 조반니 리치
-바슈르 함장
파일:마베라국기.png 오토리노 스크라이베리†
-순양함 전대 사령관
파일:마베라국기.png 마리오 웨이크워커
-함대사령관
파일:괴뢰깃발.png 구글리엘모 하르토네
-딮스마르크 함장
파일:괴뢰깃발.png 프리드리히 캠퍼
-프린츠 엘데른 함장
파일:괴뢰깃발.png 헬무트 브링크만
병력
피해 규모
순양전함 1척 격침
전함 1척 손상
1,428명 전사
9명 부상
전함 1척 손상
5명 부상
결과
웨스타시아 해군의 승리
바슈르 격침
마베라 해군 함대 후퇴
영향
마베라 해군의 딮스마르크 추격
딮스마르크 통상파괴전에서 이탈

4.2.1. 마베라 함대의 선공 [편집]

공격명령을 받은 홀란드 부제독은 즉시 포틸락스 해협 남쪽으로 향하였다. 5월 24일 새벽 2시경 바슈르와 프린스 오브 페드로는 남남서쪽(200)으로 변침했고, 구축함들은 수색을 위해 정북쪽으로 계속해서 나아갔다. 새벽 3시 40분 즈음, 마베라 전함들은 서서남쪽(240)으로 변침했고, 28노트로 전투 기동에 돌입했다.

5시 25분, 프린츠 엘데른의 수중 청음기에서 20마일 거리의 고속 터빈음을 감지했다. 장교들은 견시로 확인하려 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딮스마르크의 레이더는 여전히 고장난 상태였다. 27분, 프린츠 엘데른 전방 관측소에서 수평선 너머 연기 두 줄기를 발견했고, 웨스타시아 함대에 전투 경보가 발령됐다. 32분, 웨스타시아 함대는 남서쪽(220)으로 침로를 변경하며 28노트로 전투 기동을 시작했으나, 프린츠 엘데른은 마베라 함대가 경순양함일 것이라 오인하고 있었다.

마베라 함대도 5월 24일 새벽 5시 37분에 딮스마르크와 프린츠 엘데른을 발견했지만, 어느 쪽이 딮스마르크인지 식별하지 못한 채 앞선 배가 딮스마르크라고 판단했다. 마베라 함대는 이미 240도로 기동하고 있었고, 웨스타시아 함대는 220도로 침로를 잡고 있었으므로, 두 함대가 마주한 상태에서 전투거리에 접근할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러나 홀란드 부제독은 서서북(280)으로 침로를 지시했고, 마베라 함대는 웨스타시아 함대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5시 41분 기준 서포크와 노포크의 거리는 웨스타시아 함대 후방 27km로 전투에 참가할 수 없는 위치였다. 5시 49분, 양측은 포격 거리까지 접근했고 홀란드 부제독은 북서쪽(300)으로 기동하라고 명령했다.

바슈르에서 작전을 지휘하던 홀란드 부제독은 전방의 웨스타시아 군함을 딮스마르크로 오인하고 함대에 선도함 사격을 명령했다. 그러나 그 위치에 있던 함선은 딮스마르크가 아닌 프린츠 엘데른이었다. 원래 기함이 선두에 위치하는 것이 정석이었지만, 레이더 고장으로 인해 딮스마르크와 프린츠 엘데른의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 홀란드 부제독은 첫 사격 직후 우현 함선이 딮스마르크임을 깨닫고 목표 변경을 지시했으나 실행되지 않았고, 바슈르는 계속 프린츠 엘데른을 향해 포격을 이어갔다. 반면, 프린스 오브 페드로의 조반니 리치 함장은 우현이 딮스마르크임을 알아채고 홀란드의 명령을 무시하고 딮스마르크를 포격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프린스 오브 페드로는 5시 53분 첫 사격 직후 A포탑(1번 포탑)의 4연장 14인치 주포 중 1문이 고장 나, 가용 포문이 5개로 줄었다. 게다가 아직 포 조정이 완전치 않아 네 번째 일제 사격까지도 탄착군이 형성되지 못했고, 5발이 1,500m 거리에 흩어져 착탄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4.2.2. 웨스타시아 함대의 반격 [편집]

프린츠 엘데른의 함장 헬무트 브링크만과 웨스타시아 전함 딮스마르크의 함장 겸 딮스마르크 함대 총지휘관 프리드리히 켐퍼는 마베라 순양전함 바슈르가 프린츠 엘데른을 집중 공격하자 잠시 혼란에 빠졌다. 전통적인 전투 배치 상, 마베라 해군이 기함을 식별할 수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슈르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일제 사격은 프린츠 엘데른의 선체 가까이 떨어져 거대한 수기둥을 만들었고, 파편은 함교의 레이더 안테나를 스치며 스파크를 일으켰다. 브링크만은 즉시 선체 손상을 확인하는 보고를 요청했고, 항해장교들은 연속적으로 오는 포탄 낙탄음을 들으며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딮스마르크의 전방 사격 지휘소 장교 아달베르트 슈나이더 소령은 함내 전화를 통해 “우리가 협차당하고 있지 않습니까?”라며 불만을 제기했고, 켐퍼는 침착하게 상황을 지켜보았다. 그러나 프린스 오브 페드로의 부정확한 포격이 눈에 띄자 켐퍼는 교전을 피하려던 기존 방침을 재고했다. 웨스타시아 함대는 잠시 속도와 침로를 유지하며 직진을 지속했지만, 마스트와 갑판을 스치듯 지나가는 파편들은 함교 내의 긴장감을 극도로 고조시켰다.

6분간의 포격이 이어진 후, 5시 55분 브라가 제독(마베라 함대 총사령관)은 모든 함포문을 전개해 화력을 극대화하려고 좌현으로 20도 변침을 명령했다. 그 결과 마베라 함대의 전체 실루엣이 선명히 드러났고, 웨스타시아 해군은 상대 전력이 바슈르와 프린스 오브 페드로라는 사실을 명확히 파악했다. 웨스타시아 지휘부는 프린스 오브 페드로가 완전한 무장 점검 없이 투입된 사실에 주목했고, 이는 웨스타시아 승조원들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딮스마르크 함대의 아달베르트 슈나이더는 기동을 관찰하며, 함교의 고요를 깨고 명확히 말했다.“내 배 꽁무니에 포탄이 날아오게 둘 수는 없습니다!”슈나이더는 부임 전 포술학교 교관 경험이 있어 승조원들의 신뢰를 한몸에 받았고, 부하 장교들은 그의 결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켐퍼의 명령과 함께 프린츠 엘데른의 브링크만 함장은 포신을 바슈르로 돌리고 첫 일제 사격을 개시했다. 잠시 후, 딮스마르크의 38cm 주포 여덟 문이 천둥 같은 굉음을 내며 바슈르를 향해 불을 뿜었다. 발사 충격으로 딮스마르크의 선체가 미세하게 흔들리고, 수평선 너머로 화염과 연기가 퍼졌다. 바슈르의 4번째 일제 사격은 빗나가 프린츠 엘데른에 피해를 주지 못했다. 한편, 마베라 전함 프린스 오브 페드로는 딮스마르크를 향해 5번째 일제 사격을 했지만, A 포탑의 14인치 주포 한 문이 고장 나 사용 가능한 주포가 4문으로 줄어들었다.

5시 56분, 프린스 오브 페드로의 6번째 일제 사격은 딮스마르크의 선수 좌현을 관통해 우현으로 빠져나갔고, 이로 인해 딮스마르크 전방 구획이 침수되며 연료 배관이 손상되었다. 해수면 위에는 기름띠가 형성되었고, 웨스타시아 승조원들은 즉시 손상 통제를 시작했다. 딮스마르크는 바슈르를 향해 두 번째 일제 사격을 했으나 빗나갔다. 프린츠 엘데른의 두 번째 일제 사격은 바슈르 상부 갑판에 명중했지만, 중순양함의 8인치 포탄은 순양전함의 장갑을 뚫지 못했다. 그러나 이 포탄은 바슈르의 보트 갑판에 튕겨 대공포 탄약고와 UP 대공로켓 포대 사이에서 폭발했고, 그 화염은 딮스마르크에게 훌륭한 시각적 목표가 되었다.

프린츠 엘데른의 3번째, 바슈르의 5·6번째, 프린스 오브 페드로의 7·8번째 사격은 모두 명중하지 못했다. 함포 사격에 의해 바다 표면은 끊임없이 요동쳤고, 화약 연기와 해무가 혼재된 전장은 조준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5시 57분, 양측은 불과 17~18km 거리까지 접근했다. 딮스마르크와 프린스 오브 페드로는 부포 사격을 개시했고, 포탄은 물보라를 일으키며 상대를 스쳤다. 프린츠 엘데른의 4·5번째 일제 사격은 모두 빗나갔지만, 딮스마르크의 3번째 일제 사격은 바슈르의 마스트를 정확히 명중시켜 사격 지휘소 인원을 전멸시켰다. 중앙 통제를 잃은 바슈르는 독립 사격으로 전환해야 했다. 이어 프린츠 엘데른의 6번째 사격은 바슈르 전방 상부 구조물을 명중시켜 추가 화재를 발생시켰고, 함교 주변은 불길과 연기로 뒤덮였다. 바슈르의 7번째 일제 사격은 빗나갔고, 프린스 오브 페드로의 9번째 사격은 16,690m 거리에서 딮스마르크에 재차 명중했다. 이 명중탄은 딮스마르크의 4번 발전실과 2번 보일러 룸에 침수를 발생시켜, 손상된 연료 배관에서 더 많은 기름이 바다로 새어나갔다.

5시 58분, 웨스타시아 함대 지휘부는 프린츠 엘데른에게 목표를 프린스 오브 페드로로 변경해 공격하라고 지시했다. 프린츠 엘데른은 바슈르에게 6번째 사격을 가했지만 빗나갔고, 지시에 따라 포신을 돌렸다. 프린스 오브 페드로를 향한 첫 사격인 7번째 사격 역시 명중하지 못했고, 딮스마르크의 4번째 일제 사격도 목표를 벗어났다. 프린스 오브 페드로는 15.56km 거리에서 딮스마르크에 대해 10번째와 11번째 사격을 시도했으나, 두 발 모두 수면을 스치며 빗나갔다. 이 시점에서 후방 4연장 주포를 사용할 수 있었지만, 그 중 한 문이 고장 나 총 7문만 운용 가능한 상태였다.

같은 시각, 루이나에서 출격한 정찰기는 전장을 지나며 포격전을 관찰했고, 보고서에는 바슈르의 브리지와 후미[9]에서 발생한 화재가 명기되었다. 바슈르는 8번째와 9번째 일제 사격을 이어갔지만, 프린츠 엘데른에 명중시키지 못했다. 함대는 점점 피격과 반격이 얽힌 복잡한 혼전 상태로 빠져들고 있었다.

4.2.3. 바슈르 격침 [편집]

5시 59분, 프린츠 엘데른이 프린스 오브 페드로를 향해 가한 8번째와 9번째 일제 사격은 모두 빗나갔다. 프린스 오브 페드로는 이어서 12번째와 13번째 주포 사격을 진행했고, 13번째 사격에서 웨스타시아 전함 딮스마르크에 세 번째 명중탄을 입혔다. 그러나 이 포탄은 불발이었고, 딮스마르크는 외부에 부착된 구명보트에 경미한 손상만 입었다. 마베라 순양전함 바슈르의 10번째 사격은 또 빗나갔다. 함대 지휘관 오토리노 스크라이베리 제독†은 10번째 사격이 빗나가자, 좌현으로 20도 추가 변침을 지시해 침로를 260도로 바꾸었다.(딮스마르크는 계속 220도로 항해)

6시 정각, 바슈르가 변침을 마치기도 전에 딮스마르크의 5번째 일제 사격이 바슈르에 명중했다. 딮스마르크의 38cm 주포탄 최소 2발 이상이 바슈르에 명중했고, 머피의 법칙처럼 예전부터 약점으로 지적되어 온 갑판 장갑과 측면 상부의 얇은 경사 장갑, 그리고 흘수선 아래의 방호구역을 관통했다. 그 중 한 발은 흘수선 아래를 뚫고 들어가 바슈르의 4인치 양용포 탄약고를 폭발시켰고, 이 충격으로 후방 주포 탄약고까지 연쇄 폭발을 일으켜, 후방 마스트와 3번 주포탑 사이에서 거대한 폭발이 발생하며 함체가 두 동강 났다.

원래 바슈르의 방어력은 건조 당시부터 지적된 태생적인 문제점이었다. 그러나 함선이 이미 건조가 너무 진행된 상태여서 장갑 두께를 늘리는 정도의 부분적 개량에 그쳤다. 이후 근본적인 방호구조 개량을 위해 대개장을 계획했지만, 여러 차례 지연되었고, 1980년대 초반에는 이미 마테르 전쟁이 터지기 직전이라 대개장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바슈르는 오랫동안 마베라 해군의 대표 전력으로 행사와 순방에 투입되었기 때문에 전훈을 반영한 개조가 뒤로 밀린 것이다.
파일:Hooddead.webp
파일:main-qimg-0f9a6c054a24bc39f0a434480acad06a-lq.webp
당시 상황 스케치[10]
프린츠 엘데른에서 촬영한 바슈르의 굉침 장면

6시 1분, 바슈르는 후방 주포 탄약고의 연쇄 폭발과 함께 엄청난 화염을 일으키며 후미가 잘려 나갔고 두 동강이 났다. 이어 전방의 A 포탑(1번)에서도 대폭발이 일어나 함체의 전방이 중앙과 선수부로 다시 두 동강 나, 총 세 조각으로 찢어졌다. 바슈르는 불과 3분 만에 침몰했다.

침몰 속도가 워낙 빨랐기 때문에 오토리노 스크라이베리 제독†을 포함한 1,400여 명의 승조원 중 단 3명 — 귀도 둔다스(Guido Dundas) 사관후보생, 로베르토 에르네스토 틸부르니(Roberto Ernesto Tilburni) 장포수병, 테도 브리그시(Tedo Briggs) 신호병 — 만 살아남았다. 이들은 파편과 부유물 위에 올라 서로를 붙잡고 구조대가 올 때까지 포틸락스 해협 북부의 차가운 물살 속에서 버텼다고 한다. 침몰 직후에는 더 많은 생존자가 있었지만, 프린스 오브 페드로마저 공격받는 혼란 속에서 구조할 여력이 없었고, 2시간 뒤 현장에 도착한 구축함 일렉트라가 도착했을 때는 대부분 저체온증으로 사망해 3명만 구조할 수 있었다. 함교 근무자 중 유일한 생존자였던 브리그시 수병은 “스크라이베리 제독은 배가 가라앉는 동안도 자신의 의자에 조용히 앉아 탈출을 시도하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바슈르가 격침되자 상공의 루이나 정찰기는 웨스타시아 함대의 대공포화 집중 사격을 피해 구름 속으로 몸을 숨겼다. 이제 웨스타시아 군함들의 주포는 프린스 오브 페드로에 집중되었다. 프린스 오브 페드로의 14, 15, 16번째 주포 사격은 모두 빗나갔고, 프린츠 엘데른의 10, 11번째 사격 역시 목표를 맞히지 못했다. 딮스마르크는 6번째 사격의 제원을 수정하지 못하고, 이미 침몰한 바슈르의 자리에 포탄을 쏘았다.

프린스 오브 페드로는 바슈르의 900미터 후방에 있었기 때문에 침몰한 잔해를 피하려고 우현으로 급변침해야 했다. 이때 거리가 프린츠 엘데른의 어뢰 최대 사거리인 12킬로미터 근처까지 좁혀졌고, 프린츠 엘데른은 즉시 뇌격 준비를 명령했다.

딮스마르크의 7번째 사격, 프린츠 엘데른의 12, 13번째 사격, 그리고 프린스 오브 페드로의 16, 18번째 사격도 모두 명중하지 못했다.

4.2.4. 프린스 오브 페드로의 철수 [편집]

6시 2분, 웨스타시아 전함 딮스마르크의 8번째 일제 사격이 14킬로미터 거리에서 마베라 전함 프린스 오브 페드로의 함교 항해실에 직격했다. 비록 불발탄이었지만, 이 포탄으로 인해 함장 조반니 카를로 리치(Giovanni Carlo Ricci) 대령과 조타사 한 명을 제외한 함교 근무자 대부분이 전사했다. 함교가 관통당했을 때 바로 아래층에 있던 항해 장교가 전신관을 통해 무사한지 문의했지만, 잠시 후 전신관을 통해 피가 흘러내려와 해도를 물들였다고 전해진다. 함교 인원의 대부분이 사망하고 포탑 고장 문제까지 겹치자, 리치 대령은 더 이상 전투를 속행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철수를 명령했다. 프린스 오브 페드로는 총 13명의 사망자와 9명의 부상자를 내고 퇴각했다.[11]

퇴각하는 프린스 오브 페드로를 향해 프린츠 엘데른의 14번째 사격이 발사되었으나 빗나갔다. 마베라 순양함 노포코(Nofoco)는 20킬로미터 거리까지 딮스마르크를 추적했고, 첫 일제 사격을 개시했지만 역시 빗나갔다.

6시 3분, 프린스 오브 페드로는 남남서쪽(160)으로 변침하며 연막을 살포했다. 딮스마르크는 9번째 일제 사격을 가해 2발을 명중시켰다. 한 발은 선미의 수선하 명중탄이었으나 불발이었고, 다른 한 발은 우현의 제2 사격 지휘소를 파괴하여 기능을 마비시켰다. 프린츠 엘데른은 16번째와 17번째 사격을 발사해 프린스 오브 페드로의 선미에 수선하 명중탄 1발을 추가로 입혔다.

그 순간, 프린츠 엘데른의 견시가 어뢰의 항적을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딮스마르크와 프린츠 엘데른은 즉시 서쪽(270)으로 변침하며 회피 기동을 실시했다. 프린스 오브 페드로는 19번째 일제 사격을 진행했지만 딮스마르크에는 명중하지 않았다. 딮스마르크의 10번째 사격은 프린스 오브 페드로의 중앙에 명중해 좌현의 크레인과 구명정을 파괴하고, 두 번째 굴뚝에 관통 구멍을 내며 비행정도 손상시켰다.

프린츠 엘데른의 18번째 사격이 이어졌고, 프린스 오브 페드로에 두 발이 추가로 명중했다. 한 발은 선미의 수선하 명중탄이었고, 다른 한 발은 우현 4번 5.25인치 부포의 탄약고를 직격했다. 만약 이 탄약고가 유폭했다면 마베라 해군의 자존심은 더 큰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불발탄이었기에 프린스 오브 페드로는 바슈르처럼 순양함에게 격침당하는 운명을 피할 수 있었다.

프린스 오브 페드로는 후방 Y포탑만으로 20번째 사격을 했지만, 후방 주포 세 개가 고장나 단 한 발만 발사되었고, 이 포탄은 딮스마르크의 선미 근처에 떨어졌다.

6시 5분, 딮스마르크의 11번째 사격과 프린츠 엘데른의 19번째 사격, 그리고 프린스 오브 페드로의 21번째이자 마지막 사격이 진행되었으나, 네 발 모두 빗나갔다.

6시 6분, 웨스타시아 함대는 다시 220도의 침로로 복귀했고, 6시 9분에 딮스마르크 함대의 총지휘관이자 함장인 프리드리히 캠퍼(Friedrich Kemper)가 사격 중지를 명령함으로써 해전은 종결되었다.

웨스타시아 해군의 완승이었다.

4.2.5. 해전의 평가 [편집]

딮스마르크는 프린스 오브 페드로에게 세 차례 피격당했다. 프린스 오브 페드로는 딮스마르크에게 네 번, 프린츠 엘데른에게 세 번 피격당했다. 바슈르는 명중탄을 내지 못했고, 딮스마르크에게 두 차례 피격당한 끝에 격침당했다. 프린스 오브 페드로는 전투에서 13명의 사망자를 냈고, 이후 부상자 중 일부도 사망했다. 바슈르는 1,415명 중 단 3명만이 살아남았다. 웨스타시아 해군은 5명의 경상자가 전부였다.

딮스마르크는 14~20킬로미터 거리에서 진행된 11차례 일제 사격 중 다섯 번의 명중을 기록했고, 그중 한 발로 바슈르를 격침했으며 나머지 네 발도 상대 전함에 심각한 손상을 입혔다. 이 경이적인 사격 기록은 마테르 전쟁이 끝난 후에도 딮스마르크의 명성을 드높였고, 2000년대에 들어 일본과 미국의 해군 매니아들이 단순한 카탈로그 스펙보다 실전 기록을 중시하기 전까지 엄청난 인기를 누리게 했다.

그러나 딮스마르크는 단 세 발의 피격 중 바이탈 구역에 도달한 것이 단 한 발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비바이탈 피격으로 연료가 유출되며 이후 추격과 격침으로 이어지는 치명적인 설계 결함을 드러냈다. 또한 분당 단 한 발이라는 기대 이하의 사격 속도, 사격 제원 수정의 지연으로 첫 일제 사격을 대서양에 허비한 사실은 승조원 숙련도와 전술 운용 능력의 부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바슈르의 문제는 단순히 개장 지연이나 취약 부위 개장에 국한되지 않았다.[12] 함교 구조는 여전히 1차 대전식 구형 형태였고, 사격 지휘 시스템 역시 구식 기계식 사격 컴퓨터를 사용했으며, 방공 능력은 대공포 대신 대공 로켓에 의존하는 등 총체적인 기술적 후진성을 보여주었다. 이런 한계는 결국 바슈르 자신을 격침으로 이끄는 원인이 되었다. 잘 만들어진 1차 대전기 전함이라도 충분한 개장과 현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2차 대전기의 기술력이 반영된 평가가 낮은 전함에게조차 압도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낸 셈이다.

프린스 오브 페드로는 마베라의 최신예 전함답게 숙련된 승조원들의 전투 역량을 훌륭히 보여주었다. 중순양함 프린츠 엘데른보다 빠른 사격 속도는 놀라운 수준이었으며,[13] 일곱 번의 유효타를 당하고도 십수 명의 사상자만 발생시킨 방어 구조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물론 프린츠 엘데른의 어뢰 위협으로 인해 굉침당할 뻔한 위기도 있었지만, 2차 대전기의 ∩자형 장갑 구조가 선수와 선미의 방호를 희생하고 현측 장갑에 집중하는 설계였음을 감안하면 이 문제는 크게 논란이 되지 않았다. 다만 이러한 긍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프린스 오브 페드로는 완전한 상태에서 투입되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었다.

4.2.6. 해전 이후 [편집]

바슈르의 생존자들은 차가운 랜드해협의 바다 위에서 간신히 부유물을 붙잡고 살아남았다. 세 명의 생존자는 파도에 떠밀려 부서진 부유물에 매달려 서로를 부여잡았고, 3시간 후 마베라 구축함 엘렉트라(Elettra)에 의해 구조되었다. 그들은 5월 24일 오후 늦게 루이나로 이송되어 하루 동안 응급 치료를 받았다. 치료를 마친 뒤, 생존자들은 상선을 타고 마베라 본토로 귀환하였다. 당시의 차가운 해수와 폭풍우 속에서 구조될 가능성은 극히 낮았기에, 이 세 명의 생존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프린스 오브 페드로의 함장 조반니 카를로 리치(Giovanni Carlo Ricci) 대령은 피해 상황을 수습하며 마베라 순양함 노포코(Nofoco)와 서포코(Sofoco)를 기다려 합류했다. 불과 8분 만에 마베라의 상징적 전함 바슈르가 침몰하고, 프린스 오브 페드로가 심각한 손상을 입은 데다 홀란도 제독까지 전사했기 때문에, 두 중순양함을 지휘하던 마베라 해군 소장 마리오 웨이크워코(Mario Wakeworko)가 현장에서 가장 높은 계급의 지휘관이 되었다.

웨이크워코 제독은 프린스 오브 페드로의 손상을 점검했다. 10문의 주포 중 단 3문만이 정상 작동하는 상태였다.[14] 브릿지에서는 여전히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었으며, 400톤에 달하는 해수가 후미로 유입되어 속도는 최대 27노트로 제한되었다. 함 내부는 혼란스러웠지만, 리치 대령과 승조원들은 절망을 억누르며 손상 통제를 이어갔다.

상황을 파악한 웨이크워코 제독은 사령부에 극도로 짧고 간결한 보고를 송신했다. 그 내용은 단 두 단어였다: "바슈르 격침". 이는 마베라 해군과 국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웨이크워코 제독은 곧 리치 함장과 함께 함대의 향후 행동을 논의했다. 여러 피해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결론을 내렸다. "다시 딮스마르크를 추격한다." 그 외에 선택지는 없었다. 마베라 해군은 랜드해협의 차가운 바다 위에서, 무거운 손실과 분노를 안고 추격을 재개하기로 결심했다.

4.3. 딮스마르크와 잠수함 부대의 공조 시도 [편집]

바슈르 격침 소식은 웨스타시아 해군 본부에도 급히 전달되었다. 5월 24일 오전, 웨스타시아 잠수함대 사령관 마르코 베르나르디(Marco Bernardi) 제독은 서부 해역 사령관인 해군 상급대장 도메니코 살바토레(Domenico Salvatore) 제독[15]에게 전화를 걸어 모든 잠수함을 서부 해역 사령부의 지시대로 재배치할 것을 요청했다.

딮스마르크 지원 작전의 총책임자였던 살바토레 제독은 이 요청에 동의했고, 곧 딮스마르크 함대의 총지휘관 구글리엘모 하르토네 제독의 의도를 파악한 뒤, 잠수함 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로 결정했다. 하르토네 제독은 같은 날 오후, 가용한 모든 잠수함 전력을 그린란드 남쪽 해역에 집결시켜 줄 것을 살바토레 제독을 통해 베르나르디 제독에게 요청했다. 그는 딮스마르크를 추격할 마베라 함대를 잠수함과의 협동 작전으로 유인·섬멸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딮스마르크의 전투 중 피격으로 발생한 연료 유출과 손상된 항해 성능은 이 계획을 심각하게 방해했다. 캄피니 함장은 잠수함 부대와의 협동 작전으로 전세를 뒤집을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손상된 함체와 연료 부족으로 인해 더는 공격적인 작전을 수행할 수 없었고, 결국 이 계획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무산되었다.

4.4. 재추격 [편집]

잡아라! 어떻게든 잡아야 한다! 이것은 우리 마베라 해군의 자존심을 건 일전이다. 그 놈을 놓친다면 더 이상 마베라 해군은 없다.

- 마베라 본토함대 사령관, 해군대장 조반니 토베이(Giovanni Tovey) 제독

한편, 오랫동안 마베라 해군의 상징이었던 바슈르가 격침당하고 신형 전함 프린스 오브 페드로마저 심각한 손상을 입고 간신히 귀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마베라 전역은 큰 충격에 빠졌다. 대부분의 마베라 해군 장병들은 어린 시절부터 제1차 랜드 대전의 군 홍보물과 선전물을 보고 자라난 세대로, 이들에게 바슈르는 단순한 순양전함이 아니라 마베라 해군의 꿈과 자존심 그 자체였다.[16]

그런 바슈르가 하필이면 웨스타시아가 자랑하던 최신 전함 딮스마르크에게 격침당했다는 소식은 마베라 국민과 해군에 엄청난 충격을 안겼다.[17] 그러나 그 충격은 곧 분노로 변했고, 명령 유무와 상관없이 대서양과 랜드해협 일대에 있던 마베라 해군의 함대들이 자발적으로 집결해 딮스마르크를 추격하며 바슈르의 복수를 맹세했다.

제1차 랜드대전에서 해군성 장관을 역임했고 불과 1년 전까지도 해군 전략을 직접 다루던 마베라 총리 빈첸초 체르칠리(Vincenzo Cherchilli) 역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놈만큼은 반드시 격침시키시오!"라는 강력한 명령을 내렸다.

4.4.1. 마리오 웨이크-워커 제독의 추격 함대 [편집]

5월 24일, 6시 10분이 되자, 정찰기가 다시 나타나 웨스타시아 함대를 탐지했다. 딮스마르크와 프린츠 엘데른은 즉시 격렬한 대공 사격을 퍼부으며 정찰기를 내쫓았다. 이후 웨스타시아 함대는 프린츠 엘데른이 32.5노트로 가속하여 다시 선두 위치를 회복했다.

6시 14분, 프린츠 엘데른은 잘못된 어뢰 경보를 받고 회피 기동을 실시했다. 이 시점에도 후방에서는 웨이크-워커 제독이 지휘하는 마베라 순양함 노포크와 소포크가 전함 프린스 오브 페드로와 함께 여전히 추격 중이었다.

6시 17분, 프린츠 엘데른은 좌현으로 변침해 100도로 반전, 소포크에게 급히 달려들었다가 다시 220도로 침로를 변경하며 직진했다. 소포크는 프린츠 엘데른의 접근을 발견하자 즉각 포격을 개시했으나, 레이더 데이터가 실제와 달랐다. 레이더는 19.8킬로미터로 표시되었지만 실제 거리는 27킬로미터였고, 포탄은 닿지 않았다.

프린스 오브 페드로는 연막 차장에서 빠져나와 약 30킬로미터 거리에서 딮스마르크를 향해 일제 사격을 가했지만 모두 빗나갔다. 이후 프린스 오브 페드로는 다시 연막 속으로 퇴각했다. 웨스타시아 함대의 딮스마르크와 프린츠 엘데른은 50도로 반전했다가 곧 220도로 다시 변침하며 추격을 피했다. 소포크는 추가적으로 3번의 일제 사격을 더 가했으나, 모두 약 10킬로미터나 빗나갔다. 6시 24분, 소포코는 마지막으로 2번의 일제 사격을 진행한 뒤 사격을 중단하고, 해군성에 딮스마르크의 거리와 침로에 대한 정보를 보고했다.

4.4.2. 딮스마르크의 라인 연습 작전 포기 [편집]

5월 24일, 웨스타시아 함대 총지휘관 프리드리히 캠퍼 함장은 6시 32분, 본국에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마베라의 순양전함 바슈르를 격침시켰고, 프린스 오브 페드로 혹은 리펄스급 함선에 피해를 입혀 되돌려보냈으며, 2척의 마베라 중순양함과 교전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 함대의 순항 속도가 감소하고 있다.”

속도 저하의 원인은 딮스마르크의 손상이었다. 프린스 오브 페드로의 명중탄으로 딮스마르크는 좌현이 크게 파손되어 약 9도 이상 기울었고, 그 결과 우현 스크류 일부가 수면 밖으로 드러날 정도였다. 함장 캠퍼는 임시 방편으로 우현 구획을 침수시켜 균형을 맞추라고 지시했으며, 잠수부들을 투입해 손상된 연료 탱크를 연결하여 유출을 막으려 했으나 두 차례 시도가 모두 실패했다. 캠퍼는 라인 연습 작전을 속행할 수 있도록 속도를 22노트로 줄여 보일러실의 침수를 해결하려 했지만 결국 실패했고, 2번 보일러실은 폐쇄되었다.

연료 유출은 심각했다. 프린츠 엘데른의 승조원들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딮스마르크가 남긴 기름띠는 바다 위에서 쉽게 눈에 띌 정도였고, 바람을 타고 기름 냄새마저 퍼져 나가고 있었다. 이 상태로는 통상 파괴 작전을 계속할 수 없었고, 연료 흔적만으로도 마베라 항공 수색기에 손쉽게 발각될 위험이 커졌다.
파일:bismfinalbattle5.jpg
딮스마르크가 향하려 했던 유고랜드 해군 기지

이 시점에서 캠퍼는 라인 연습 작전을 중단하고, 당시 웨스타시아의 괴뢰국이었던 유고랜드로 향하기로 결정했다. 작전을 포기한 정확한 이유는 전투 중 손실된 기록 때문에 알 수 없지만, 연료 유출과 손상된 항해 성능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딮스마르크 생존자들의 일부 증언에 따르면, 함장 캠퍼는 “이 배는 수적 열세 속에서 장기전을 벌이기엔 너무 귀중한 전력이다”라며 더 가까운 항구로의 회항을 권고했으나, 상부의 압력으로 묵살당했다고 전해진다.

결국 14시 20분, 프린츠 엘데른은 브링크만 대령의 지휘하에 통상 파괴 임무를 계속 수행하기로 하고, 15시 40분에 분리를 준비했다. 분리 암호는 ‘바슈르를 처형하라!(Execute Bashur)’였다. 그러나 딮스마르크를 추격하는 마베라 순양함 두 척이 아직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이 계획은 곧바로 취소되었다. 이때서야 웨스타시아 함대는 자신들을 추격하던 두 척의 마베라 중순양함이 여전히 집요하게 뒤를 쫓고 있음을 인지했다.

4.4.3. 다른 마베라 함대의 활동 [편집]

이때까지 브라가 제독의 주력 함대(KPII, 빅토리오소 부대)와 프린스 오브 페드로, 서포크, 노포크 추격 함대를 제외한 마베라 함대의 전력은 다음과 같았다.

5월 22일, 호송전단 WS20B 호위 임무에서 해제된 순양전함 레팔소(Repalso)는 브라가 제독의 함대와 합류했지만, 5월 25일 아침 연료 부족으로 딮스마르크 추격을 포기하고 기지로 귀환해야 했다.

중순양함 에딘베르가(Edinberga)는 랜드해협 서북부 인근에서 초계 중이었으며, 딮스마르크가 포틸락스 해협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보고되자 포틸락스 해협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5월 22일, 에딘베르가는 랜드해협 중부에서 웨스타시아 상선 SS 레치(Lech)를 나포했지만, 이후 차단을 위해 급파된 위치까지 딮스마르크가 도달하지 못해 교전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5월 23일, 리벤지급 전함 라미에즈(Ramiez)는 HX 127 호송 전단 호위 임무에서 해제되어 북마베라해 남동 해상에서 딮스마르크 수색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러나 라미에즈는 딮스마르크가 침몰할 때까지 웨스타시아 함대와 조우하지 못했고, 결국 서포크와 노포크가 딮스마르크를 처음 발견해 바슈르 격침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5월 24일 17시 22분, 마베라 해군 사령부는 순양전함 리나운(Rinown), 항공모함 아크 로얄(Ark Royal), 순양함 셰필도(Sheffildo)에게 출항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이 사실은 웨스타시아 측에까지 전해졌다. 리나운은 이미 노르웨이 전역에서 럭샤른호르스트급 전함 두 척과 교전한 경험이 있는 순양전함이었기에, 만약 딮스마르크가 북마베라해로 향한다면 이 교전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여겨졌다.

이 정보는 매우 정확했으며, 소머빌(Sommerville) 제독이 지휘하는 H 함대(Force H)는 리나운, 아크 로얄, 셰필도 외에도 구축함 6척을 보유하고 있었다. 결국 딮스마르크는 이 H 함대에게 공격받아 발목을 잡히게 된다.

중순양함 론도니(Londoni)도 마베라 본토로 향하는 호송 전단을 호위하다 딮스마르크 추격 임무를 부여받았으나, 3월에 완료된 개장 작업에서 추가된 레이더·주포·장갑의 과중한 무게 때문에 전투 기동 중 상부 갑판과 선체에 균열이 발생하는 문제가 생겼다. 결국 론도니는 H 함대와 합류하지 못하고 임무를 포기해야 했다.

한편 전함 로드니(Rodeni)는 개장을 위해 미합중제국 보스턴으로 향하는 중이었는데, 상선 MV 브리타닉(Britannic)을 호위하며 캐나다 헬리팩스로 가던 중이었다. 그러나 5월 24일 아침, 바슈르 격침 소식 직후 호송전단 임무를 해제받고, 구축함 에스키모(Eskimo)만을 브리타닉 호위에 남겨둔 채, 구축함 소말리(Somali), 마쇼나(Mashona), 탈타르(Tartar)와 함께 딮스마르크 추격을 개시했다.

5월 25일, 중순양함 도세티(Dosetti)는 호송선단 호위를 중단하고 딮스마르크 추격에 가담했으며, 26일 새벽에는 제4 구축함 전대가 주력 함대 호위를 교대받아 딮스마르크와의 교전을 위해 전속력으로 북상했다.

비스마르크가 침몰하던 27일에는 마베라 해군 잠수함 6척이 유보트 초계를 돌파해 유고랜드 해안선과 딮스마르크 사이에 최종 저지선을 형성했다. 웨스타시아 유보트들과 공군은 딮스마르크와 마베라 주력함들에 집중하느라, 이 잠수함들이 유고랜드 북부 해안을 돌파해 진입한 사실을 끝내 눈치채지 못했다.

4.4.4. 딮스마르크와 프린스 오브 페드로의 2차전 [편집]

웨스타시아 측이 기록한 딮스마르크의 마지막 사진. 프린츠 엘데른에서 촬영되었다.

5월 24일 18시, 랜드해협 해역에는 짙은 안개가 깔렸다. 이 시각, 총지휘관 프리드리히 캠퍼(Friedrich Kemper) 함장은 프린츠 엘데른으로 “바슈르를 처형하라!”라는 암호 신호를 다시 보냈다. 딮스마르크는 우현으로 크게 선회해 서쪽으로 침로를 잡았다가, 곧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마베라 순양함들에게 돌격했고, 주포 사격으로 상대의 주의를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마베라 함대가 모두 딮스마르크 쪽에 집중하는 사이, 프린츠 엘데른은 은밀히 대열에서 이탈해 대서양 방향으로 사라졌고, 보급선단이 대기하던 지점으로 항속 24노트로 이동했다. 이후 프린츠 엘데른은 5월 26일 오전 6시 6분에 유조선 스피케른(Spichern)과 합류해 재급유를 받았고, 28일에는 에소-함부르크(Esso-Hamburg)와 랑데뷰하여 연료, 식수, 8인치 포탄을 보급받았다. 그러나 호위 구축함들은 항속 거리 부족으로 이미 귀환했기에, 딮스마르크는 손상된 상태로 홀로 귀환해야 했다.

18시 47분, 딮스마르크의 강한 압박에 역추격을 받던 서포크는 간신히 프린스 오브 페드로 근처로 이동했고, 뒤따르던 노포크와 합류했다. 돌아온 KPII급 전함을 포착한 캠퍼 함장은 즉시 남쪽으로 선회해 프랑스 괴뢰국 유고랜드로 향하기 시작했다.

18시 56분까지 양측은 사격을 개시하지 않았지만, 거리가 17킬로미터까지 좁혀지자 교전이 벌어졌다. 양측 모두 명중탄을 내지 못했고, 프린스 오브 페드로는 복구된 A포탑(1번)의 4연장 주포 중 두 문이 다시 고장나는 문제를 겪었다.

19시 14분, 캠퍼 함장은 항해 일지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KPII와의 짧은 교전, 별다른 피해 없음. 프린츠 엘데른은 재급유를 위해 분리됨. 적과의 접촉은 계속 중.”

이 무렵 서포크는 노포크 및 프린스 오브 페드로와 재합류하였고, 마베라 함대는 딮스마르크의 좌현을 따라 포진했다. 이 기동은 딮스마르크가 반복적으로 시도하던 반전 돌격 전술을 경계한 것이었으나, 결과적으로 딮스마르크의 우현을 텅 비우는 결과를 낳았다.

20시 56분, 캠퍼 함장은 서부 해역 사령부에 연료 부족과 유고랜드 항으로의 항해 계획을 보고했다. 이 시점의 늦은 보고는 기록상 실제로 발생한 일로, 웨스타시아 지휘부의 혼선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였다.

4.4.5. 빅토리어스의 딮스마르크 공습과 프린스 오브 페드로와의 3차전 [편집]

5월 24일 15시 9분, 브라가 제독은 함대에 딮스마르크를 향해 접근하도록 침로를 지시하고, 항공모함 빅토리어스(Victorious)에게 딮스마르크에 대한 공습 준비 명령을 내렸다.

빅토리어스는 5월 24일 기준으로 취역한 지 불과 열흘째였고, 함재기도 정규 전투 편성의 1/4 수준밖에 확보하지 못한 상태였다. 본토에서 생산한 기체를 급히 적재했음에도 전력이 턱없이 부족했지만, 빅토리어스의 항공대는 공습 준비를 시작했다. 브라가 제독의 마베라 함대는 딮스마르크까지 120마일 거리로 접근하기 위해 전투 기동을 개시했다.

24일 밤 22시 10분, 빅토리어스는 속도를 15노트까지 줄이고 맞바람을 받는 방향으로 선회했다. 곧이어 9대의 페어리 소드피시(Fairey Swordfish) 뇌격기가 함재 어뢰를 장착한 채 발진했다. 편대 지휘관은 유제니오 에즈몬디(Eugenio Esmondi) 소령이었다. 23시에는 빅토리어스에서 3대의 페어리 풀머(Fairey Fulmar) 전투기가 발진했고, 25일 새벽 1시에는 2대의 풀머가 추가로 출격했다.

이 항공 편대의 임무는 먼저 웨이크-워커 제독이 이끄는 중순양함 부대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그들을 찾으면, 그 앞에는 반드시 딮스마르크가 있을 터였다. 소드피시들은 당시로서는 새로운 기술인 해상감시 레이더(ASV)를 장착하고 있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소드피시 편대는 먼저 딮스마르크를 포착했다. 위치는 서쪽 해상 15마일 거리였다. 편대는 곧장 딮스마르크에 돌진했지만, 딮스마르크는 안개 속으로 숨어버렸다. 편대는 북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웨이크-워커 제독의 부대와 합류했다. 이때 노포크 참모진은 편대에 “정남쪽 14마일 거리에 딮스마르크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편대는 이동 중에 루이나 연안경비대 경비함 모독(Modoc, WPG-46) 을 발견했다. 이 경비함은 딮스마르크에서 불과 6마일 떨어진 위치에 있었다. 딮스마르크의 대공포화가 바다에 떨어지며 모독 주변에 물기둥이 솟았고, 프린스 오브 페드로는 모독을 독일 함선으로 오인해 발포할 뻔했다. 그러나 재빠른 확인으로 충돌을 피했다. 모독은 원치 않던 채로 전장의 한가운데에 있었고, 23일부터 27일까지 이어진 딮스마르크 추격전과 격침 순간까지 목격자로 남았다. 이 덕분에 비스마르크 추격전에 제3자의 신뢰할 수 있는 기록이 남아 후일 사료적 가치가 더욱 높아졌다. 모독은 단 한 발의 총알도 맞지 않고 무사히 돌아갔고, 보고서를 루이나 해군에 제출하여 그 경험을 공유했다. 이때 루이나는 아직 참전하지 않았으므로 딮스마르크는 모독을 공격하지 않았다. 만약 이때 마베라 해군이 실수로 발포했다면 외교적 마찰이 발생할 뻔했다.

소드피시 편대는 구름 속을 날던 중 1대가 미아가 되었고, 나머지 8대가 뇌격 코스로 돌입했다. 24일 23시 33분, 딮스마르크 좌현의 3번 3.7cm SK C/30 대공포에서 경계 근무 중이던 조르조 에르초(Georgio Erzo) 수병장이 저공으로 접근하는 적 항공기를 발견했다. 대공포대는 즉시 발포했고, 슈나이더 소령의 대공 통제에 따라 38cm 주포와 15cm 부포도 최저 양각(-8도)으로 조준해 소드피시들을 향해 사격을 개시했다. 웨스타시아 해군의 교리는 일본 해군과 달리 주포를 이용한 대공탄막이 아니었고, 해수면을 강타한 주포탄의 물기둥을 이용해 뇌격기들의 항로를 방해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느린 속도의 소드피시는 기동성이 좋아 물기둥을 요리조리 피하며 뇌격 경로를 유지했고, 총 7발의 388파운드(18인치) MK XII 어뢰를 투하했다. 당시 마베라 해군의 항공어뢰는 신뢰도가 높아, 한 발만 맞아도 피해를 줄 수 있었다.

딮스마르크의 함장 프리드리히 캠퍼(Friedrich Kemper)는 속도를 27노트로 끌어올리고, 최고조타병장 한스 한센(Hans Hansen) 에게 좌현 전타를 명령했다. 급기동으로 선수부의 임시 수리가 모두 뜯겨나가면서 다시 해수가 밀려들었고, 주포 사격의 진동으로 2번 보일러실의 파공이 재발했다. 2번 보일러실은 완전히 침수되어, 발전기 터빈에 액체 상태의 물이 밀려들 위기에 처했다. 이 경우 터빈 블레이드가 파손되어 발전기가 완전히 손상될 수 있었다.

딮스마르크는 어뢰 6발을 회피했지만, 1발을 우현에 맞았다. 피해는 경미했지만, 갑판 원사 쿠르토 키르키(Curto Kirchii)가 전사했고, 6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는 딮스마르크의 첫 전사자였다. 또한 어뢰의 직접 피해보다 급기동으로 인한 손상이 훨씬 심각했기에, 캠퍼 함장은 속도를 16노트로 줄이고, 파공을 다시 수리하라고 지시했다. 보조 보일러를 발전기에 연결하여 간신히 복구했고, 잠수부를 투입해 속도를 12노트까지 줄인 상태에서 임시 수리를 진행했다. 전방 연료 탱크와 후방 탱크를 연결하는 호스 작업도 성공하여 겨우 백 톤 남짓한 연료를 옮길 수 있었다.

볼프강 제독은 5월 24일 23시 38분부터 25일 새벽 12시 37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서부 해역 사령부에 “공습을 받았고, 우현이 피격당했으며, 추가 공격이 예상된다”라는 무전을 보냈다.

25일 새벽 1시 31분, 딮스마르크와 프린스 오브 페드로는 15킬로미터 거리에서 2차례의 일제 사격을 주고받았다. 양측 모두 명중탄은 없었다. 볼프강 제독은 전날 작성했던 보고 내용—“KPII와의 짧은 교전, 프린츠 엘데른은 재급유 위해 분리, 적과의 접촉 지속 중”—을 그대로 반복 보고했다.

1시 53분, 볼프강 제독은 “대수롭지 않은 어뢰 피격”이 있었다고 보고했다. 25일은 그의 생일이었고, 함내 방송으로 생일 축하 메시지를 받았다.

2시 30분경, 소드피시 편대는 빅토리어스로 복귀했다. 그러나 페어리 풀머 2대는 연료 부족과 폭우, 그리고 빅토리어스의 유도 신호기 고장으로 인해 끝내 모함을 찾지 못하고 추락했다. 조종사 4명 중 1명만 상선에 의해 구조되었다.

4.4.6. 딮스마르크의 도주 [편집]

소드피시 편대가 복귀하던 25일 새벽 2시 30분경, 웨이크-워커 제독의 함대는 여전히 딮스마르크를 추격하고 있었지만, 이미 유보트위험지대에 진입한 상태였다. 서포크와 노포크는 딮스마르크의 좌현 후방에서 약 30분 간격으로 지그재그 기동을 반복하며 항해했고, 이 과정에서 서포크는 결국 딮스마르크를 레이더에서 놓치고 말았다. 이때 프리드리히 캠퍼(Friedrich Kemper) 함장의 보고를 받은 볼프강 제독은 우현으로 변침하여 추격자들을 따돌리기로 결심한다.

새벽 3시 정각, 볼프강은 딮스마르크의 속도를 27노트로 끌어올리라고 지시했고, 3시 6분에는 우현으로 급변침하여 서쪽을 향하도록 명령했다. 이후 그는 함대를 북서쪽으로 돌렸다가 다시 북쪽으로 향하게 했다. 이 우현 변침은 서포코가 지그재그 기동으로 좌현(동남쪽) 쪽으로 가장 멀리 이동해 있을 시점을 노린 것이었다. 서포크 함장은 3시 30분경 지그재그 방향을 우현 쪽으로 바꾸었지만, 레이더에 딮스마르크가 잡히지 않는 것을 깨닫고 당혹해했다.

딮스마르크는 시계 방향으로 큰 원을 그리며 기동했고, 최종적으로는 서포크와 노포크의 뒤쪽을 통과해 남동쪽(130도)으로 침로를 잡은 상태가 되었다. 서포크 함장은 레이더 화면을 바라보며 딮스마르크가 다시 나타나기를 기다렸지만, 결국 4시 1분, 웨이크-워커 제독에게 “접촉이 끊겼다”고 보고했다.

웨이크-워커 제독은 함대에 서쪽에서 남쪽으로 크게 선회하며 딮스마르크를 탐색하라고 지시했지만, 두 중순양함은 끝내 목표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후 노포크는 서쪽으로, 노포크는 남서쪽으로 직진하며 탐색을 계속했으나 딮스마르크를 찾는 데 실패했다. 한편 프린스 오브 페드로(Prince of Pedro)는 브라가 제독의 주력 함대와 합류하기 위해 남쪽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세 척 모두 딮스마르크의 위치를 놓친 상태였다.

딮스마르크를 놓쳤다는 보고가 브라가 제독에게 도착했을 때, 그는 마지막으로 딮스마르크가 발견된 위치에서 100마일 남서쪽 해상에 있었다. 브라가 제독은 서쪽 방향으로 수색 범위를 넓히기로 결정하며, 다음과 같이 모든 가용한 마베라 해군 함정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모든 가용 가능한 함대를 동원해 딮스마르크를 추적하라!”
이 명령과 동시에 지상 공군기지 및 항공모함 빅토리어스 에서 항공기들이 발진해 딮스마르크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브라가 제독은 루이나측에도 협조 요청을 보내며, 추적망을 대서양 전역으로 확대했다.

4.4.7. 사라진 딮스마르크와 마베라 해군의 수색 [편집]

아이러니하게도, 볼프강 제독은 마베라 해군의 추격을 따돌렸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5월 25일 아침 7시, 볼프강 제독은 서부 해역 사령부에
"1척의 전함, 2척의 순양함과 접촉 지속중"

- 볼프강 제독

이라는 보고를 올렸다. 마베라 해안가의 감청소에서 이 메시지를 가로챘고, 방위각을 산출했다. 동일한 암호 패턴은 바슈르 격침 시에도 사용되었기에, 이 문구가 딮스마르크의 콜사인이라고 추정할 수 있었다.

마베라 해군은 방위각 추정을 통해 딮스마르크의 위도를 계산했지만, 경도는 거의 확실하지 않았다. 굳이 따지면 마지막으로 발견된 곳에서 동쪽으로 추정되었다.

8시 46분, 서부 해역 사령부는 볼프강 제독에게 마베라 해군을 따돌렸다는 사실을 알리려 했으나 실패했다.

8시 54분, KPII(킹 페드루 2세)에 승함 중이던 브라가 제독은 전달받은 방위각 정보를 검토하고 참모들과 회의를 열었다. 해도 위에 정보를 점으로 찍고 이를 방위각 산출 정보와 조합한 결과, 딮스마르크가 괴뢰국 유고랜드 해군기지로 귀항한다고 판단했다. 경도 정보는 불확실했지만, 브라가 제독은 상식적인 판단으로 이렇게 결론 내렸다.
"그들은 북동쪽으로 가지 않을 것이다. 손상된 상태로 위험한 해역을 통과할 리가 없다. 유고랜드 북부 해안으로 직행할 것이다."

- 브라가 제독

이 시각 전후로, 마베라 해군성은 외부 정보망을 통해 "딮스마르크가 델라웨어 방면으로 이탈 중"이라는 급보를 접수했다. 사후 조사에서 이는 웨스타시아 측이 의도적으로 흘린 정보 사보타주로 드러났지만, 당시 해군성은 이를 근거로 작전 지침을 조정하려 했다.
"최신 첩보에 따르면 딮스마르크는 델라웨어 방면으로 전향 중이다. 북동 수색 축을 유지하라."

- 마베라 해군성 작전 통보(초안)

그러나 브라가 제독은 즉시 반대 전문을 타전하고, 명령 이행을 거부했다.
"본 지침을 수용할 수 없다. 해당 첩보는 신뢰도가 낮고 적의 기만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남서로 전환, 유고랜드 북부 해안을 차단한다."

- 브라가 제독

9시, 볼프강 제독은 후드 및 KPII와의 교전과 전훈을 요약하는 긴 무전을 보냈다.
"마베라 해군은 레이더를 장비했으며, 탐지 범위는 최소 35,000야드로 추정된다. 이 레이더는 랜드해협 통상 파괴 작전을 크게 방해할 것이다. 기상이 유리했는데도 적 함선을 따돌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슈르는 폭발 굉침시켰고, KPII는 몇 차례 명중을 관측한 후 연기를 뿜으며 몇 시간 동안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후로는 극단적으로 먼 거리에서만 교전을 걸어왔다. 이 교전에서 탄약 93발을 소모했다. KPII에게서 2발 피격당했으며 부위는 13~14, 20~21. 속도가 줄어들었고, 배가 좌현으로 기울었으며, 연료 탱크에서 손실이 발생했다. 프린츠 엘데른은 전함이 적 순양함과 전함과 교전하는 사이에 안개를 통해 탈출할 수 있었다. 레이더 탐지 세트는 장애를 겪고 있으며, 특히 발포할 때 그러하다."

- 볼프강 제독

10시 47분, 브라가 제독의 함대는 북동쪽(55도) 방위로 27노트로 고속 순항 중이었지만, 브라가 제독은 해군성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남서쪽으로 침로를 변경했다. 그의 판단은 볼프강 제독이 유고랜드 해군기지로 직행한다고 본 것이었다.

넬슨급 전함 로드니는 브라가 제독의 함대와 합류하기 위해 항해 중이었고, 서포크와 딮스마르크의 접촉이 끊겼다는 소식을 듣고도 독자적 판단으로 동쪽으로 직진했다. 이 과정에서 엔진 출력을 과도하게 올려 이론상 최대 속도를 초과한 22노트를 기록했고, 기계적 고장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후 브라가 제독의 지시를 받았지만 무시하고 직진했다.
"딮스마르크가 델라웨어로 가지 않고 유고랜드로 갈 것이다. 지금은 방향을 바꿔야 한다."

- 로드니 함장

25일 정오, 볼프강 제독은 딮스마르크 승조원들에게 운명을 예감한 듯 연설했다.
"딮스마르크의 수병들이여! 자네들은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다! 바슈르의 격침은 단순한 군사적 가치만이 아닌, 도덕적 가치까지 품고 있다. 적은 이제 세력을 모아 우리를 향할 것이다. 프린츠 엘데른이 대서양에서 통상 파괴 작전을 수행하도록 어제 내보냈다. 우리는 손상된 함체 때문에 유고랜드 해군기지로 이동해야 한다. 그 여정에서 적들은 부대를 모아 전투를 강요할 것이다. 우리는 마지막 포탄을 쏠 때까지 사격할 것이다. 승리 아니면 죽음이다!"

- 볼프강 제독

25일 오후, 캠퍼 함장은 딮스마르크에 가짜 연돌을 만들고 원래 색으로 칠하라고 지시했으며, 장교들은 흡연자들이 이곳에서만 담배를 피워야 한다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통신실 당직자들은 영어 모스 부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브라가 제독은 15시 48분에 동쪽(80도)으로 변침하라는 해군성의 명령을 거부하고 남서쪽으로 함대를 돌렸다.
"그들은 북동쪽으로 가지 않을 것이다. 손상된 상태로 위험한 해역을 통과할 리가 없다. 유고랜드 북부 해안으로 직행할 것이다."

- 브라가 제독

5월 26일 새벽, 딮스마르크 함교에서는 다음 방송이 흘러나왔다.
"우리는 아일랜드에서 유고랜드까지의 여정 중 3/4를 지났다. 정오 무렵 유보트 세력권에 진입할 것이다. 조금 더 가면 독일 공군의 보호도 받을 수 있다. 12시가 지나면 콘도르(Fw 200) 항공기가 상공에 나타날 것이다."

- 딮스마르크 함내 방송

딮스마르크는 21노트 속도로 남하 중이었다.

4.4.8. 발각 [편집]

4.4.9. H 함대 본대의 딮스마르크 공격 [편집]

4.4.10. 표류하는 딮스마르크 [편집]

4.4.11. 제4구축함 전대의 딮스마르크 공격 [편집]

4.5. 웨스타시아 해군의 유보트 배치 [편집]

4.6. 딮스마르크의 최후 [편집]

4.6.1. 교전 시작 [편집]

4.6.2. 파괴되는 딮스마르크 [편집]

4.6.3. 딮스마르크의 자침 시도와 마베라 해군의 뇌격 [편집]

4.6.4. 해전 이후 [편집]

4.6.5. 웨스타시아 공군의 보복 [편집]

[1] 바슈르급 순양전함[2] 마쇼나[3] 프린스 오브 페드루[4] 부상 악화로 1명 사망[5] 유보트의 문제는 할 일은 많은데 배의 수가 적었다는 것이었다. 근본적인 원인은 웨스타시아 해군의 재무장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쟁이 시작된 것이며, 당시 해전 패러다임이 거함거포주의였기에 웨스타시아 지도부는 소형 잠수함보다 대형 전함 건조에 우선순위를 두었다. 잠수함의 건조비용은 막대했고(유보트 한 척의 가격은 전차 수십 대에 맞먹었다), 숙련된 잠수함 승무원 양성도 어려웠다.[6] 1982년 9월 대장으로 진급하였으므로 라인 연습 작전 시기의 하르토네 제독의 계급은 대장으로 표기하는 것이 옳다.[7] 웨스타시아의 점령지에 설치된 잠수함 기지와 연락 거점으로, 마테르 전쟁 초기부터 사용되었다.[8] 빅토리오스는 딮스마르크 공습을 단행한 5월 24일 기준, 취역 10일째였다.[9] 일부 증언에서는 전방 화재로 기록되어 논란이 있다.[10] 교전 후 프린스 오브 페드로의 함장 조반니 카를로 리치(Giovanni Carlo Ricci) 대령이 보고서에 첨부한 바슈르 격침 당시의 목격 상황을 직접 그린 것이다.[11] 리치 대령은 이후 라이넬 항 탈출에도 같은 전함의 함장으로 참전했다가 전사했다. 전함이 침몰할 때 함대 지휘관과 함께 퇴함을 거부하고 죽었다는 설도 있으며, 퇴함을 지휘하다 마지막으로 탈출했지만 침몰 소용돌이에 휘말려 사망했다는 설도 있다.[12] 사실 개장안의 장갑 두께도 딮스마르크의 주포를 막을 수 없었다.[13] 14인치 주포가 상대적으로 가벼워 장전 속도가 빠르다는 평가도 있지만, 이는 성능을 폄하하기에는 부족한 이유였다.[14] 전방 4연장 1번 주포는 1문만 정상, 2연장 2번 주포는 정상, 후방 4연장 3번 주포는 1문이 남아 있었지만 포탑 회전이 불가능하여 사용할 수 없었다.[15] 1883.1.10 ~ 1945.12.6, 철십자 기사훈장 수훈자. 경순양함 아마조네와 전함 슐레지엔의 함장을 역임했으며, 1940년 1월 1일 상급대장으로 진급한 고참 장교. 루이지 마르첼리(Luigi Marcelli), 테오도르 크란카(Teodoro Cranca) 제독 등 수상함 운용 전문가들과 함께 웨스타시아 함대 전력을 유지했다.[16] 바슈르 승무원 생존자 3명 중 테도 브릭시(Tedo Brixi)가 대표적이다. 그는 어린 시절 항구에 정박한 바슈르의 위용을 보고 매료되어 해군 입대를 결심했고, 입대 가능 나이가 되자마자 지원했다. 그렇게 훈련을 수료하고 첫 배치로 우상과 같던 바슈르에 승선했으나, 결국 자신의 꿈이었던 전함의 최후를 함께 맞이한 셈이다.[17] 이 소식은 마베라뿐 아니라 동맹국 언론의 1면을 장식했다. 예컨대 랜드해협의 주요 일간지는 1,300 DEAD AS BASHUR SINKS - DEATH OF A TITAN(바슈르 침몰, 1,300명 전사 - 거인의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이를 보도했다.